천과 실이 지배하는 작업실에서는 재봉틀과 가위가 움직이는 소리만 들려왔다. 시침이 가르키는 숫자는 6. 창 밖에 해가 떠오르고 있으니 아침이었다. 그것은 곧 의상 발표회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2시간 뿐이라는 말이었다. 쿠라는 자꾸만 조급해지려고 하는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가위질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도 않았고, 이제는 정말 더는 실수해서는 안 됐다.
‘아, 제발. 평소에는 잘 했잖아. 그 이상 잘 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야! 그냥 그 평소처럼만 하면 되는 일인데!’
그런 말을 되뇌일 수록 심장 박동 수는 더 오를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쿠라는 스스로를 자꾸만 재촉하게 됐다. 촉박함도 있지만 죄책감 때문이었다. 이 시간까지 재봉틀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 것은, 망가진 옷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멀쩡한 옷을 망가트린 사람이 바로, 아사쿠라 아유미, 쿠라였다.
발 한 번을 잘못 내딛었다. 모델의 날카로운 힐은 그에 비해 한없이 부드러운 옷감을 파고들어 찢었다. 시착을 위해서 입은 옷이 그대로 형편없는 천조각으로 변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몇 초였다.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지만 사과는 근본적인 수습이 아니었다. 아유카와 씨는 남은 시간 안에 의상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작업실로 달려갔고, 쿠라는 미안함에 하루 동안이라도 그의 조수가 되겠다고 청했다. 아유카와 씨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겠냐 싶었지만, 그런 거라도 하지 않고 내일을 기다릴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도움을 준 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시점에서 해낼 수 있는 잡무는 몇 가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지금 하고 있는 가위질이었다. 초크로 그려진 선을 따라서 자르는 단순한 일. 그렇지만 얼마나 섬세한 기교를 요하는 것인지, 바르게 자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제 발을 동동 구르게 된 것이다.
“…. 됐다.”
시간이 더 지나서 7시가 되었을 때. 아유카와 씨가 내뱉은 한 마디가 모든 것을 중지시켰다. 쿠라는 가위질을 끝내고서 옷에 부착을 할 부자재를 분류하고 있던 중이었다.
“벌써 끝내셨다고요?”
“그래. 여기 와서 한 번 볼래?”
쿠라는 들고 있던 리본을 마저 정리하고 다가갔다. 망가트렸던 옷은 이번 의상 중에 가장 복잡한 형태를 했었다. 같은 것을 만든다고 했을 때, 반나절로는 안 될 것 같아 보였는데. 역시 디자이너는 남다른 사람이기에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드는….
“어? 아, 아유카와 씨, 옷이….”
만드는 것은 역시 불가능했던 것일까. 작은 리본을 하나씩 엮어서 레이스처럼 보이게 만든 의상이 아니었다. 치마단의 뒤는 길고 앞은 짧다. 어디를 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언발런스 원피스로 보였다.
쿠라는 당황함을 숨기지 못 하고서 아유카와를 바라봤다.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 지, 꽤 장난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소 안에는 피로로 숨기기 어려운 자신감도 엿보였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전혀, 다, 다른 옷이잖아요!”
“그래 맞아. 전혀 다른 옷이야. 쿠라…라고 했던가? 고마워, 쿠라. 옷을 다시 만들 수 있게 해줘서.”
시원스러운 긍정에 쿠라의 경악은 지워질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설마, 옷을 만드는 것이 힘들어서 포기한 걸까. 역시 반나절만에 만들기에는 어려웠던 것이 분명했다.
쿠라는 고맙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게 진정성을 가진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물쭈물거리는 입술이 내뱉은 말은 이랬다.
“정말…. 죄송해요. 제가 아유카와 씨의 첫 번째 무대를 망치게 된 것 같아서…. 정말, 어떻게 보상할 수도 없이….”
“쿠라 씨?”
금방 울 것만 같은 얼굴을 하는 쿠라에 아유카와 류지는 서둘러 이렇게 만든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눈물을 보이게 만들기 전에 모든 걸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 몇 번은 혀를 씹은 말들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옷 자체는 예전이 더 좋았을 게 분명하지만, 이 옷이 무대에 올라가 있을 당신이랑 가장 잘 어울릴 거야. 그래서 이렇게 만든 거야.”
듣고 있어, 쿠라 씨? 하고 싶은 말을 마친 아유카와는 그가 눈물을 다 흘리지 않았는 지 서둘러 얼굴을 살폈다. 다행히, 물줄기는 한쪽 뺨에만 흘려있었다. 몇 시간 뒤면 무대에 설 모델이다. 엉망인 얼굴로 내보낼 생각은 없었다.
“…모델은 옷을 빛나게 해주는 사람인데. 아유카와 씨, 당신은 오히려 제가 더 빛날 수 있게 해줬군요.”
“거창하게 말하네. 하지만 그게 맞는 말인 것 같아. 내 디자인의 지향점은 입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주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런 점에서 ‘내 옷’이 아니라 ‘네 옷’을 만들 필요가 있었어. 그 기회를 어제의 네가 준 거지. 이렇게, 찢어내면서!”
“까, 꺄악! 뭐 하시는 거예요, 디자이너 님!”
쿠라는 경악하고 아유카와는 웃었다, 그는 말하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원피스 치마단을 잡아당겼다. 여전히 찢어지기 좋은 부드러운 천이었다. 뒷단은 힘에 의해서 아주 가볍게 찢겼다. 쿠라는 그 순간의 충격으로 현기증을 느꼈다. 눈 앞이 빙글빙글 돌면서 봄꽃은 본 것만 같았다.
“네가 준 아이디어야, 쿠라 씨.”
아니. 정말로 봄꽃을 보았다. 지금 계절은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이는 겨울이었는데도.
“이건!”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생각한 것보다는 화려하지 않네. 흠.”
“화, 화려하지 않다뇨! 저는 정말로 봄이 온 줄 알았는데요!”
원단이 찢어지면서 숨어져 있던 꽃무늬 레이스가 튀어나왔다. 길이가 짧아진 드레스 위로 긴 레이스가 덮이면서 은방울 꽃이 생각나는 모양의 원피스로 변했다. 마법이라고 부린 것만 같았다.
쿠라는 흥분한 채로 말을 이어갔다.
“이건, 이건, 분명한 또 다른 역작이에요, 아유카와 씨! 이 전의 옷도 정말로 예뻤는데. 이건, 신비로워요. 매력적이라서 계속 바라보게 되는 옷이에요!”
“이걸 입어줄 사람이 당신이라는 걸 알고 하는 소리지?”
이렇게 장난이 많은 사람이었나. 아니면 부끄러움을 장난으로 숨기는 사람인 걸까. 유쾌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를 바라봤다. 홍조는 없지만 귀가 붉었다. 쿠라는 그가 얼마나 위대하고 멋진 사람이던간에 그도 자신과 같은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을 거란 생각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 사람과 함께, 만든 옷이라는 생각에….
‘어, 어떻게 해. 눈물을 참을 수 없어!’
아까침에 놀란 마음을 애써 숨겼더니만. 기쁨의 눈물마저 숨길 수 없었다. 쿠라의 눈물에 아유카와의 당황한 음성이 들렸다. 쿠라는 괜찮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기뻐서 그래요. 기뻐서…. 아유카와 디자이너 님의 응원처럼, 이 옷을, 정말로 최고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함께 만든 옷이잖아요.”
“그러네. 모델을 그만두게 된다면 정말로 내 조수로 들어올 생각은 없어?”
“그러기에는 모델 일이 너무 좋네요, 선생님!”